<그림자, 그리고 나>
나는 사람 관계에서 온전히 내 것이라는 개념이 원래 없었다. 다만 가족이나 연인은.. 많은 것을 공유해도 날 사랑하는 존재. 나의 부족함과 이상성과 여러 가지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도 유지되는 관계 즈음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이란 서로간의 상호 행위임을, 결국 우리는 너무 다른 타인임을 몰랐다. 연애에서 나와의 헤어짐을 택한 타인의 선택에 언젠가부터 “나는 사랑받기 어렵겠다.”는 막연하지만 확실한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나는 매력적이지 않구나. 그런 확신을 만들어 갔다. 그 사람은 내 것이고, 이 관계가 완벽하다 믿어서 황홀했는데, 그 믿음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고는 상처를 받고 슬픔에 빠졌다. 왜 헤어지게 된걸까? 그 이유를 X파트를 만들어 알아냈던 거 같다.
그래서 나의 X파트는 “난 매력적이지 않아.”이다. X파트가 만들어지고 나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사랑을 할 수 없는 이유로 만들어내며 다가가길 주저했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X파트의 말에 사로잡혀 이 부분을 벗어나 사랑하는 경험을 못 해봤다. 조금 용기내 볼까 했지만 비슷한 결론에 나는 X파트를 더욱 견고히 한 듯하다. 사랑을 겁내고 있다. 미로 속에 갇혀 있다.
매력적이지 않다고 믿는 모습들이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그림자’라고 한다.
내 그림자는 어떻게 생겼냐고? 표정이 별로 없고, 그래서 딱딱하고 무미건조해 보인다. 얼굴과 몸에 살이 많고 허벅지가 굵다. 요리나 살림을 못하고 돈도 잘 못 번다. 목소리가 작고 눈이 퀭하다. 모든 면이 완벽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나의 착각은 이 그림자를 없애고자 노력하게 한다. 살을 빼야 해. 돈을 더 벌어야 해. 더 감정표현을 잘 해야 해. 그래야 연애를 할 수 있고, 헤어지지 않을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을 줄 수 있어. 과연 그런건지.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의 과제가 출몰하는 듯하다. 이제는 건강해야 사랑을 받고 줄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이 그림자와 대화를 나눠 보려 한다.
그림자 : 안녕,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해?
나 : 안녕. 난 네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사랑을 하려면 살을 빼야 한다고, 감정표현이 많아야 한다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연애를 할 수 있다고. 그래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그림자 : 반대로 살림엔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 뭐가 두려운 거야?
나 : 또 버림받는 게 무섭지. 하기 싫은 걸 해야 사랑받는 상황이 오는 게 두렵고. 책임지지 못할 것을 시작하는 게 싫어. 노력해야 사랑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어렵고 힘들어. 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고.
그림자 : 넌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거 같아. ‘매력적’이란 건 뭐야? 살을 빼고, 표정이 풍부해야만 매력적인 거야?
나 : 그래야 더 예쁘니까.
그림자 : 더 예뻐야만 사랑할 수 있는거야? 난 이대로 사랑받고 싶은데. 이대로 매력적이고 싶어.
나 : 나도 그러고 싶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허들을 넘으려고 하다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야.
그림자 : 사랑할 기회를 놓치진 마.
나 : 사랑할 기회?
그림자 : 날 사랑할 기회. 다른 이를 사랑할 기회.
나 : 널 사랑하면 난 더 잘 사랑하게 될까? 버림받지 않을까?
그림자 :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버림’이란 없어. 누가 누굴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너도 알잖아. 소유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버릴 수 있겠어? 한두 번의 시련으로 너무 큰 두려움 속에 살진 마.
나 : 그래, 난 미로 속에 좀 오래 있었어 그치? 허들도 허상이야.
그림자 : 허벅지가 굵어도 얇아도 사랑은 해.
돈이 많아도 적어도 사랑은 할 수 있어.
감정표현을 잘 못해도 사랑할 수 있어.
목소리가 작아도, 얼굴이 못나도 사랑할 수 있어.
이 착각의 영역만 넘어서면 햇빛이 기다리고 있을꺼야.
나 : 내 착각의 영역은 ‘완벽한 나여야 사랑받을 수 있고, 매력적이다.’라는 거구나.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하기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어렵구나. 다른 사람에게도 완벽을 바라고, 나에게도 완벽을 바랐네.
그림자 : 세상의 모든 사랑을 너에게 모아 그걸 나에게 보내줘. 가장 최악의 네 모습을 상상해. 그게 나고, 너는 날 사랑하게 될 거야. 너는 우주를 통틀어 막강한 사랑가가 될 거야. 분명한 건 매번 완벽할 수 없고, 매번 사랑에 성공할 수는 없다는 거야. 더 분명하게는 ‘완벽’이란 게 없다는 거야.
나 : 감사함을 계속 생각해내는 힘을 기르라 하더라고. 그래서 말해볼게. 나는 내 의지대로 걷고, 눕고, 앉고, 움직일 수 있어 감사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해.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감사해. 부모님이 좋은 사람이라 감사해. 크게 아프지 않고 커서 감사해. 하고 싶은 것들을 해온 삶을 살아와서 감사해. 나를 사랑하려 노력하는 나라 감사해. 그래 그림자. 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해. 그래서 감사해.
그림자 : 나도 감사해. 너의 관심과 사랑을 기다릴게. 나는 이미 널 사랑해.
*
자료
1) 넷플릭스, 심리다큐,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 X파트: 나에게 내가 보내는 부정적 메시지. 완벽히 사라지지 않지만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다.
- Shadow(그림자):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못난 모습. 그림자는 관심이 필요하다. 그림자(나의 못난 모습)와 솔직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
- Snapshot(착각의 영역):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것. 완벽을 추구한 나머지 나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완벽은 내 머릿속 이미지에 불과하다. 모든 것의 전제는 우리가 매번 이길 수 없고, 성공할 수 없으며,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제할 수도 없다. 다만 전진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 이 세상에 사랑하는 힘이 있는데 이 모든 사랑을 나에게 흡수하는 기분을 느껴본다. 온 우주의 사랑을 흡수하여 나에게 화를 돋우는 사람에게 모든 사랑을 쏟는 사랑을 해본다. 스스로 완전한 기분을 느끼고 미로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간다. 인생은 미로 속에 빠져 있어도 계속 앞으로 전진하니까.
-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제 뭘하면 될까?’를 고민한다.
- 감사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매번 같은 대상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만들어낸다. 이것이 힘이 될 것이다.
2) 상실과 관련된 그림책 “The Boy and Gorilla”
나는 무엇을 상실했나.
무엇을 가졌다고 생각했는지, 무엇을 가지고자 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랑을 잃었다. 사랑을 얻고자 했다. 그것에 대해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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